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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는 내 인생, 장방식은 이만희도 못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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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는 내 인생, 장방식은 이만희도 못 건드려”
  • 정윤석 기자
  • 승인 2025.05.21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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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원 전강사 인터뷰 2편] 신천지 32년 경험, 이재원 전 강사가 말하는 신천지

이재원 전 강사는 신천지에서 32년 이상을 헌신하며 청년회장, 강사, 총회 문화부장, 불광동 도마지파장 등 핵심 직책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그가 직접 경험한 신천지 내부의 구조와 교리, 충성의 과정과 탈퇴의 결심까지 3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정리해서 글과 영상으로 올립니다. [편집자주]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참 충격적인 말씀이지만, 단 한 번도 신천지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32년간 신천지에 몸담았던 이재원 전 강사의 고백이다. 그는 1991년 입교 후 2023년 11월 제명될 때까지, 조직 안에서 청년회장, 강사, 문화부장, 불광동 도마지파장 등 핵심 역할을 감당했던 인물이다. 신천지에서의 삶은 단순한 ‘직분’이나 ‘활동’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체와 맞닿아 있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내 인생 그 자체였어요. 신천지를 부정하게 되면 내 인생 전체가 부정되는 거예요. 그럼 나는 어디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게 두려웠던 거죠.”

이재원 전 강사는 신천지에 처음 발을 들인 이래, 한 번도 ‘여기가 틀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가 했던 생각은 ‘이 조직이 무너지면 안 된다’, ‘고쳐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내가 의미 있으려면 신천지는 옳아야 해요. 그래야 내가 한 일이 의미가 있고,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잘못된 건 고쳐야겠다는 생각은 해도, 여기가 틀렸다는 생각은 선택지에서 아예 제외시켜버린 거죠.”

그는 자신이 겪었던 심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신천지보다 더 차원 높게 성경을 풀어주는 곳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문제가 생겨도, 이 말씀을 열어준 이 조직을 부정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어요. 이게 바로 신천지를 오래 다닌 사람들, 특히 사명자들이 쉽게 못 나오는 이유입니다.”

신천지를 떠나는 문제는 단지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길수록, 믿음은 더 굳어졌고, 삶의 무게는 더욱 그 조직에 종속되어갔다. 신천지 안팎의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개혁’이라는 방향을 선택했지만, 그조차도 신천지를 벗어나는 선택과는 다른 차원의 접근이었다.

“제가 대학부 회장을 하던 시절, 청년들을 데리고 일부러 기성 교회뿐 아니라 이단으로 지목된 단체들까지 직접 찾아갔습니다. 실로등대교회(김풍일), 승리제단(조희성), 부활의교회, 안상홍 증인회, 장로교, 순복음교회까지 다 가봤어요. 단순히 ‘신천지가 맞다’는 말을 믿은 게 아니라, 직접 가서 부딪혀보라고 한 겁니다.”

당시 신천지는 청년들에게 ‘우리가 최고인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돌아오라’는 정신을 강조했다. 이재원 전 강사는 그런 치열한 ‘전투적 신앙훈련’을 자신이 주도했다고 회상한다.

“청년들이 가서 성경 토론하다가 목사님들께 논리에서 밀리고 펑펑 울고 돌아오기도 했어요. 그러면 밤새 모여서 공부하고, 다시 찾아가고 그랬죠.”

이런 반복 속에서 형성된 교회 외부에 대한 불신은 깊었다. 그는 “목사님들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깨졌고, 다른 이단들도 다 경험했기에 신천지에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갈 곳이 없었다고 했다.

“더 좋아 보여야 떠날 수 있는 거예요. 근데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었어요. 그러니 어떤 문제가 있어도, 여기 말씀을 열어준 저 사람(이만희), 이 조직은 내가 부정해야 할 선택지에서 아예 제외시켜버린 겁니다.”

이재원 전 강사의 경험은 단순한 교리 수용이 아닌 신념의 사슬에 가까웠다. 더 나은 해석과 더 강력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오히려 조직에 생기는 문제는 ‘외부보다 양호하다’는 자기합리화로 흘러갔다.

“일반 교회에서도 목회자 비리 터지고, 다른 이단들도 다 문제들 나오잖아요. 그러다 보니, 우리 안의 문제는 그나마 이만하면 양호하네,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거죠.”

이재원 전 강사는 그 시절의 자신을 지금 되돌아볼 때, 진리에 대한 갈급함은 분명 진심이었지만, 결국에는 왜곡된 해석에 사로잡힌 신념의 늪에 갇혀 있었던 것이었다고 담담히 털어놓았다.

이재원 전 강사, 신천지 교리 붕괴 후 이만희에게 개혁안 전달 시도

그런 그에게 균열이 생긴 것은 ‘코로나’ 때부터였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교리 자체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전까진 ‘고쳐야 한다’였는데, 그때는 ‘이게 정말 맞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19 사태 이후 그의 마음에 처음으로 흔들림이 찾아왔다. 사역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 아니라, 신천지 교리의 근본적 오류를 자각하게 된 계기였다.

“이때부터 생각이 바뀌었어요. 교리도, 행정도, 헌금도, 여성 문제도… 전반적으로 다 고쳐야 한다. 아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 간 거죠.”

그는 당시 교리를 포함한 개혁안 문서를 작성했다. 단순한 의견 정리가 아니었다. 총회장인 이만희 씨에게 직접 제출할 계획으로 항목별로 정리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문서였다.

“교리를 고치자는 게 가장 큰 핵심이었어요. 신천지는 교리로 움직이는 조직이니까요. 그다음은 헌금 투명성, 재정 구조 문제, 김남희 사건으로 드러난 여성 관련 문제, 그리고 조직 내부의 비민주적인 운영… 다 포함했어요.”

그는 기자회견도 준비했었다고 밝혔다.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문제를 알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하지만 개혁안은 전달되지 못했다. 아니, 전달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만희 씨는 혼자만의 공간에 갇혀 삽니다. 고동안이 총무가 되고, 고성에 평화의 궁전이 생기면서부터 성도들과는 거의 단절됐어요. ‘십상시’ 체제예요. 고동안, 김평화 같은 몇 사람을 통하지 않으면 그 사람과는 연락조차 안 됐습니다.”

그는 이만희와의 단절을 신천지 내부 개혁이 불가능한 결정적 원인으로 꼽았다. 조직을 움직이는 수장은 이미 ‘현장’에서 떠났고, 남은 것은 그를 신격화하며 지시만 받는 하부 구조뿐이라는 것이다.

“절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바꿀 마음이 없는 거예요.”

그는 스스로를 반역자가 아닌 개혁 시도자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천지 조직은 비판을 듣는 구조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해명의 기회도 없이 제명 통보가 날아왔다. “근신도 없이 바로 제명. 그게 신천지의 방식이었어요.”

이재원 전 강사는 이 시기를 신천지 신앙의 결정적 붕괴 시점으로 꼽았다. 그동안은 고쳐 쓸 수 있다고 믿었지만, 교리가 무너지고, 조직이 닫혀 있고, 지도자가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그는 그곳에 더는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김남희는 충격이었고, 공희숙은 무너짐 그 자체였습니다”

신천지 32년의 생활 동안 가장 그에게 충격을 준 사건은 역시 ‘총회장의 여자 문제’였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요? 김남희 사건, 그리고 공희숙 강사 사건입니다. 김남희는 충격이었고, 공희숙은 무너짐 그 자체였어요.”

이재원 전 강사는 신천지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만든 사건으로 두 사람의 스캔들을 꼽았다.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된 조직이 실상은 인간의 욕망과 위선으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절감하게 된 계기였다. 김남희와 이만희 교주의 동거, 수십억 원 위자료, 성전 건립을 위한 수천억 요구 편지 등은 그동안 믿어온 종교적 상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에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선 ‘영적인 관계’라는 해명이 있었고, 솔직히 의심은 했지만 어느 정도 선을 지키겠지 싶었어요. 그런데 실제로는 아니었더라고요. 이혼 위자료로 30억, 성전 짓는다고 3천억 가져오라는 편지를 받았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이게 과연 종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재원 전 강사에게 진짜 무너짐으로 다가온 사건은 공희숙 전 강사와 이만희의 관계였다. 공희숙 전강사는 그에게 있어 오랜 친분을 나눈, 개인적으로 믿었던 사람이었다.

“불광동에서부터 함께했고, 그분 언니가 우리 교회 집사님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왕래도 많고, 자주 통화하던 사이였어요. 그런데 그분이 이만희와 그런 관계였다는 걸 듣는 순간… 정말 무너졌습니다.”

공희숙 강사의 입에서 직접 사실을 듣기 전까지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고 한다. “편지를 받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런 관계가 지속되고 있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죠. 그건 너무 큰 차이였습니다.”

그는 가장 믿었던 사람이 가해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만희 교주가 종교 지도자가 아닌,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건 종교 지도자의 행태가 아닙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인정할 줄 알아야죠. 그게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 아닙니까?”

그러나 이만희는 한 번도 사과하거나, 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었다고 그는 단언했다.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감추고, 변명만 합니다. 김남희 사건이 드러나도, 공희숙 사건이 터져도… 이만희는 끝까지 본인을 합리화했습니다.”

이재원 전 강사는 이만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이 좀 되십시오. 짐승처럼 살지 마시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는 이만희가 신천지 안의 수많은 성도들의 양심과 상식을 빼앗아 버렸다고 했다. 그 안에서는 누구도 비판하지 않고, 누구도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과와 반성, 인정이 사라진 곳, 그것이 신천지의 민낯이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판단력을 제거했습니다. 신앙인이 아니라, 충성된 종처럼 만드는 조직입니다. 김남희와 공희숙 사건은 그 실체를 똑똑히 보여준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신천지는 양심과 상식을 뽑아내는 조직입니다”

“이만희 씨는 신천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양심과 상식을 뽑아냈습니다. 스스로 판단할 능력도 없고, 옳은 걸 옳다 말할 생각도 못 하게 만들었어요.”

이재원 전 강사의 증언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었다. 그는 32년 동안 조직의 안과 밖, 위와 아래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다. 그가 본 신천지의 진짜 문제는 교리나 행정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바로 사람의 양심을 무력화시키는 구조, 비판과 반성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문화였다.

“그 안에서는 누구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요. ‘미안하다’,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 이런 말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조직문화가 아니라, 교주 이만희의 지도 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모든 명령은 위에서 내려오고, 그 결정에 대한 토론이나 검증, 비판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직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지파장, 교육장, 강사들 모두 교주를 닮아갑니다. 인격도, 성품도, 신앙의 태도까지도. 결국 지도자의 도덕성 자체가 전체 시스템을 결정합니다.”

이재원 전 강사는 김남희·공희숙 사건이 벌어진 뒤, 이만희가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고 사실을 부정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가장 큰 실망을 느꼈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조직 전체가 입을 다물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이 실수할 수 있죠. 그러나 문제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인정하고 고치겠다는 말 한 마디가 없어요.”

그는 이를 두고 “신앙인이 아니라 짐승처럼 산다”고 표현했다. 그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순간 중 하나는 정치권 유착 의혹이 터졌을 때 신천지 측이 발표한 공식 입장문이었다. “정치와 무관하다고요? 저한테도 관련 녹음파일이 어마어마하게 있어요. 다 공개됐는데도 부인해요. 그게 신천지입니다. 신앙을 팔아먹는 조직이에요.”

이재원 전 강사는 ‘사람의 양심을 병들게 하는 신앙’, 그것이 신천지의 본질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신앙이란 진실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이고, 양심을 살리는 것인데, 신천지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신앙인이면 드러난 문제를 인정해야죠. ‘잘못했다, 고치겠다’ 그래야 양심이 병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천지는 그걸 오래전에 버렸어요.”

이만희 교주는 성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결국에는 판단을 대신해주는 절대자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체계는 지파장과 강사들, 성도들에게까지 그대로 전이되어, 결국 아무도 문제를 말하지 않는 무비판적 집단이 되었다.

“예배 받는 자가 되어버린 이만희… 그때 확신했습니다”

이재원 전 강사는 신천지 총회 문화부장으로 일하던 2000년대 중반, 신천지 예배에서 벌어지던 이상한 변화를 직접 목격했다. 처음에는 미묘한 변화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명백한 신격화 작업이었다. 그 정점에 선 인물은 바로 이만희 교주였다.

“신천지는 예전엔 통일찬송가를 불렀어요. 그런데 2013년쯤부터 신천지 새 찬송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곡이 바뀌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만희를 찬양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어요.”

예배 후에 부르던 찬양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 행함은…”과 같은 찬송가를 부르며 집회를 마무리했지만 새 찬송가에는 이만희 개인을 찬양하는 가사가 담기기 시작했다.

“예배는 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예배를 받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총회장 입장할 때 행진곡 틀고 박수치고 환호하는 게 행사장에서뿐 아니라 예배 시간에도 벌어졌어요. 그때 확신했습니다. 아, 이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구나.”

그는 총회 문화부장으로서 최소한 예배에서는 그런 연출을 하지 말자고 제안했지만,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응이었다.

“총회 문화부장으로서 제가 바꾸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예배 분위기였어요. 최소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총회장이 예배를 인도하러 오는데 다들 일어나서 박수치고, 절하고… 이건 예배가 아니라 우상 숭배였습니다.”

예배가 무너지는 것을 보며 그는 더 이상 신천지가 하나님 중심 조직이 아니며, 교주 중심의 체계로 완전히 전환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당시 총회 문화부장 자격으로 직접 총회 내부에 물었다.

“선생님은 예배를 드리는 분입니까, 받는 분입니까? 선생님을 찬양하는 것은 선생님을 위한 겁니까, 선생님을 욕보이는 겁니까?”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총회 측은 일체의 반응을 하지 않았고, 그 뒤로 예배 구조의 왜곡은 더욱 공고해졌다. 작사자들 중에는 공희숙 강사처럼 이미 탈퇴한 이들도 많아졌고, 그들이 만든 찬송은 공식 예배에서 점점 제외되었다. 그러나 신격화를 멈추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

예배 시간에 벌어지는 일들만 보더라도, 신천지가 더 이상 성경의 하나님을 따르는 조직이 아님은 명백했다. 이재원 전 강사는 예배의 왜곡이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가장 큰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건 종교가 아니라 사교 집단이다. 그리고 이 조직은 더 이상 예배를 드리는 곳이 아니라,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연출 무대일 뿐이라는 것을요.”

“이건 맨정신으로 못합니다… 저는 귀신의 역사라고 봅니다”

“처음부터 사기였습니다. 이만한 조직을 만드는 것도, 이렇게 위세를 떨치는 것도… 저는 사람의 힘만으론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맨정신으론 못 해요. 저는 이걸 귀신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신천지에서 32년간 활동했던 이재원 전 강사는 이만희 교주와 신천지의 정체를 이렇게 평가했다. 그가 오랜 시간 몸담았던 조직에 대해 내린 이 결론은 단순한 배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충격을 거쳐 내려진 신학적, 실존적 판단이었다. 그는 이만희의 사역 초기부터 이어진 흐름을 지적하며, 장막성전 붕괴 이후 백만봉을 따라갔다가 독립한 과정 자체가 의도된 모방과 사기였다고 본다.

“이만희 씨는 처음엔 장막성전에 있었고, 그 후 백만봉을 따라다녔습니다. 백만봉은 시한부 종말을 주장하며 ‘1980년 3월 13일 해가 멈춘다’고 예언했지만, 실패하고 손을 털었죠. 그런데 이만희는 ‘그럼 내가 하지’라며 다시 조직을 시작했어요. 저는 그때 뭔가 귀신이 들어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재원 전 강사는 이만희가 유재열, 백만봉 등의 이단 사상과 조직 기술을 흡수한 후, 자신만의 신격화 프로젝트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외형적으로는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친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정통 기독교와 아무 관련 없는 왜곡된 영적 권위를 세우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이만희는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 했습니다. 찬송가를 바꾸고, 예배 중에 자신을 찬양하게 만들고, 성도들에게 절 받는 사람 됐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건데, 이 사람은 예배를 받는 자가 되었어요.”

이런 흐름은 단순한 우상화나 개인숭배가 아니며, 이재원 전 강사는 이를 영적 질서의 파괴이자 귀신의 역사로 명확하게 규정했다.

“건진법사인가 하는 사람이 이만희를 ‘영매’라고 했죠? 저도 그 말에 동의합니다. 저 사람은 귀신에게 씌었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성령의 역사였다면 이렇게 안 합니다.”

그는 이만희 개인만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세워진 신천지 전체가 악한 영의 영향 아래 있다고 판단했다. 그곳에서는 성경도 이용되고, 진리도 왜곡되고, 결국 사람들의 양심과 신앙이 마비되었다는 것이다.

“신천지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기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적인 사기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된 기만이고, 그 배후에는 귀신이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재원 전 강사는 끝으로 “내가 이 조직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은혜였고, 동시에 의무”라고 말했다. “귀신의 역사가 만든 조직이라면, 사람의 힘으로는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제 이 사기를 밝히는 데 남은 인생을 쓰겠습니다.”

“신학원 시스템은 실로등대에서 베꼈고, 모략전도로 폭발했습니다”

“신천지가 이렇게 커진 건 그냥 된 게 아닙니다. 실로등대교회에서 신학원 시스템을 베꼈고, 그걸 무료 성경신학원으로 돌파한 겁니다. 그리고 ‘모략전도’로 전국 확산이 가능했죠.”

신천지의 급성장 비결에 대해 묻자, 이재원 전 강사는 단호히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신천지의 조직적 확장에는 뚜렷한 전략과 모델이 있었고, 그 모델은 실로등대교회(김풍일)로부터 가져온 것이었다고 한다.

“제가 부산에 있을 때, 실로등대교회에서 목사 한 명이 넘어왔어요. 그 사람이 이만희에게 제안했죠. ‘우리는 신학원 체계가 있습니다. 이걸 신천지에도 도입하면 성장합니다.’ 이만희가 바로 수용했어요. 거기서부터 시작된 겁니다.”

그때부터 신천지는 무료 성경신학원을 전국에 설치했고, ‘계시록 22장 16~17절 말씀’과 ‘이사야 55장’을 앞세워 “값없이, 돈 없이 말씀을 주겠다”는 슬로건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전단지를요, 한 사람이 하루에 4천 장씩 뿌렸습니다. 저도 그랬고, 우리 청년들은 더 했어요. 하루 네 번 거리로 나가서 뿌리는데, 전단지 접는 방법까지 교육했어요. 탁탁탁 접어서 우편함에 꽂는 데 1초도 안 걸릴 정도로요.”

신천지는 당시 부산뿐 아니라 마산, 진해, 창원 등 인근 도시로까지 봉고차를 타고 가서 조직적으로 전단지를 뿌렸다. 전도 이후에는 곧바로 성경세미나로 연결했고, 그 다음 단계가 신학원이었다.

“신학원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가 붙습니다. 바로 ‘모략전도’입니다.”

모략전도는 단순한 전도가 아니었다. 상대방의 관심사, 배경, 성향을 사전에 파악한 뒤, 그것에 맞춘 전도 접근법을 설계해 들어가는 방식이다.

“이 사람은 뭘 좋아하는가, 어떤 고민이 있는가. 그걸 분석해서 접근했어요. 이게 성도 포섭률을 확 끌어올렸어요. 사실상 신천지 성장의 2대 축은 무료 신학원과 모략전도입니다.”

거기에 ‘경쟁 시스템’이 더해졌다. 지파별, 센터별, 교회별 전도 실적을 비교했고, 인사권과 보상까지 실적에 따라 움직였다.

“이제는 경쟁 체제예요. 실적이 낮으면 강사는 도태되고, 실적이 좋으면 담임이 되고 지파장도 됩니다. 그래서 강사들이 실적을 올리려고 무리수를 둡니다. 성도 유입보다 실적 관리가 우선이 됐어요.”

신천지의 폭발적 성장은 신학원 시스템 도입과 전략적 모략전도로 이루어진 결과였다는 것이 이재원 전 강사의 분석이다.

“청년들이 김밥 한 줄 먹고 밤새도록 뛴 전단지 전도… 거기에 신학원 시스템과 모략전도가 붙고, 경쟁과 보상이 결합되면서, 신천지는 단기간에 전국 조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뿌리는 빌려온 것이었고, 그 열매는 속임수였습니다.”

“지금 지파장은 파리 목숨입니다”

“지금은요, 지파장이 누군지도 잘 모릅니다. 하도 자주 바뀌니까요. 예전엔 지파장 한 번 되면 몇 년이고 갔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파리 목숨입니다.”

32년간 신천지에서 활동했던 이재원 전 강사는 지금의 신천지 인사 구조를 이렇게 설명했다. 성도 수와 실적 중심으로 운영되는 조직 안에서, 지파장과 강사, 교회 담임은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빌립지파만 해도 김원국에서 이영로, 그리고 갑자기 이정수로 바뀌었어요. 이정수는 원래 서대문 교회 담임이었는데, 지파장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죠. 그냥 한순간에 바뀌는 겁니다.”

이재원 전 강사는 이러한 교체가 자주 일어나는 이유로 이만희 교주의 절대적 인사권을 꼽았다. 모든 인사는 결국 교주의 승인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지파장조차도 ‘눈 밖에 나면 바로 갈리는 자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경쟁 체계로 돌아가요. 지파별, 센터별, 교회별로 전도 실적을 경쟁시키고, 거기서 결과가 안 좋으면 바로 교체입니다. 이만희 씨가 인사권을 다 쥐고 있으니까요.”

지파장과 강사들의 운명은 결국 실적에 달려 있고, 실적은 또 다시 내부 권력 투쟁과 줄 세우기로 이어진다. 심지어는 지파장들끼리도 눈치를 보고 경쟁해야 하는 구조다.

“예전엔 지파장 되면 어느 정도 자리가 보장됐지만, 지금은 실적에 따라 바뀌어요. 담임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지파장이 되고, 지파장이었다가 갑자기 교회로 내려오기도 합니다.”

강사 인사도 이만희의 재가 없이는 임명될 수 없다. ‘상신’이라는 내부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며, 강사 사령(명령서)이 떨어져야만 실질적인 권한이 부여된다.

“지파장은 인사권, 행정권, 심지어 재정권까지 다 가집니다. 그러니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줄을 섭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자리예요.”

이러한 구조에서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학습효과”라고 그는 지적했다.

“앞에서 수많은 지파장들이 돈을 해먹고 도망가는 걸 봤어요. 그러니 강사들도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가서 한 번 해먹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게 지금 신천지 내부의 현실입니다.”

그는 이 구조를 “사명자가 아니라,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거룩한 직분으로 유지해야 할 자리가 결국 출세욕, 권력욕, 금전적 이득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주님의 일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 ‘얼마나 빨리 올라가느냐’만 따지는 자리예요.”

이재원 전 강사의 증언에 따르면, 오늘날 신천지의 권력 구조는 이만희 중심의 절대권력 통제 시스템 속에, 실적을 위해 움직이는 비정한 인사 경쟁 체제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이제는 아무리 사역을 잘해도 실적이 안 나오면 바로 내칩니다. 그러니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구조가 됐어요. 한 마디로 지금의 지파장은, 명함도 오래 못 씁니다.”

“장방식은 이만희도 못 건드립니다”

“지금 신천지 안에서 이만희가 손을 못 대는 유일한 인물이 있습니다. 장방식입니다.”

32년간 신천지 내부에서 활동했던 이재원 전 강사는 신천지 조직 내 권력구조를 설명하며 맛디아 지파장 장방식의 존재를 특별히 강조했다. 장방식은 초창기부터 지파장을 맡아 조직 기반을 완전히 장악했고, 그 안에서 독립적인 ‘공화국’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장방식은 자기가 직접 성도들을 교육하고 키웠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그 조직력은 신천지 어느 지파와도 비교가 안 됩니다.”

그는 과거 장방식의 딸 결혼식 사례를 들며, 이만희 교주조차 장방식을 존중하고 의식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딸 결혼식을 전국적으로 광고했어요. 돈도 전국에서 걷었고요. 이만희도 결혼식에 직접 참석했습니다. 그만큼 장방식은 신천지 안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는 인물입니다.”

그는 과거 지재섭(전 베드로지파장)처럼 신천지 전체를 상대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 지금은 장방식 한 명뿐이라고 분석한다.

“지금 열두 지파장 중에 장방식만큼 조직을 꽉 쥔 사람은 없어요. 나머지는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는 신참들일 뿐입니다. 하지만 장방식은 ‘건드릴 수 없는 카드’예요.”

이재원 전 강사는 2023년, 신천기 40년을 계기로 신천지 내부에 후계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런 기대와 예상을 했었다고 고백했다. 성경에서 40년은 변화를 상징하는 수이며, 모세→여호수아, 사울→다윗, 다윗→솔로몬의 흐름처럼 지도자 교체의 명분이 생길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신천지도 40년이면 뭔가 변화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장방식이 있을 거라고 봤어요. 그는 교리도 알고, 조직도 알고, 무엇보다 이만희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장방식은 움직이지 않았고, 신천지 내부에서도 어떤 새로운 흐름도 생기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성경적으로 후계자를 세울 근거는 다 사라졌습니다. 40년이라는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남은 건 이제 엘리야와 엘리사 정도뿐이에요. 그나마도 구체적 시기는 없잖아요.”

이재원 전 강사는 지금 누가 후계자를 자처해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지파장들이 교체되고 있지만, 대부분 조직을 장악할 만한 인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방식이 만약 반기를 들면 신천지는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이만희도 못 건드리는 겁니다. 지금도 신천지에서 가장 무서운 이름은 장방식입니다.”

그는 신천지의 권력구조가 이만희 절대권력 아래 있지만, 그의 사후 장방식이 변수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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