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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대처와 성경 연구를 함께하는 이단 특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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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대처와 성경 연구를 함께하는 이단 특강[3]
  • 장운철 목사
  • 승인 2017.05.2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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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 성경말씀 들으면 기절하거나 도망갈까?

세 번째 연재 글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관주 사용하기’ 중에서 ‘유월절 이야기’와 ‘마태복음 이야기1’ 제목의 내용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바른 성경 연구는 이단을 대처하는 것과 동시에 개인의 성경공부 능력도 역시 높여줍니다. 필자는 그 방법을 4가지로 소개하려 합니다. 관주 사용하기, 다른 번역서 사용하기, 문맥 따라 성경읽기 그리고 참고서 활용하기 등입니다. 10여 회 연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필자 주>

목차

1. 관주 사용하기
1-1 모세 이야기
1-2 니고데모 이야기
1-3 가인과 아벨 이야기
1-4 유월절 이야기
1-5 마태복음 이야기

2. 다른 번역서 사용하기
3. 문맥 따라 성경읽기
4. 참고서 활용하기

1-4. 유월절 이야기

▲ 관주 성경을 통해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세 번 지내셨음을 알게 된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이에게 성경읽기로 흔히 요한복음을 권한다. 예수님에 대해 보다 쉽게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장을 읽다보면 ‘유월절’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유월절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의외의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요2:13절에서다. 먼저 살펴보자.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요2:13)

유월절의 의미를 알아보려는 게 아니다. 물론 유월절은 유대인의 3대 절기 중 하나다. 우리의 설이나 추석처럼 1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우리는 유월절이 요한복음에 몇 번 등장하는가에 대해 살피려는 것이다. 관주 성경을 보면 요 2:13절의 유월절 단어 앞에 관주 표시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관주는 두 개의 요한복음 성경 구절로 연결시켜 준다. 바로 요6:4절과 요11:55절이다. 각각의 구절도 찾아보자. 아래와 같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요6:4)

“유대인의 유월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요11:55)

유월절이라는 절기 이름이 성경에 등장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바로 시간이다. 지금 유월절에서 다음 유월절까지의 기간이 1년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어림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요한복음에 나타난 유월절을 통해서 말이다. 정리를 해보자. 요 2장의 유월절과 요 6장의 유월절 사이가 1년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요 6장의 유월절과 11장의 유월절 사이 역시 1년이다. 합치면 요 2장에서 요 11장까지 만 2년이라는 시간의 계산이 나온다.

물론 관주를 계속 찾다보면 유월절이라는 단어 자체는 요한복음에 몇 차례 더 나온다. 유월절 단어가 나올 때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요 11:55절에서 언급한 유월절이 유월절 당일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다. “유월절이 가까우매”라는 표현 때문이다. 그 아래 구절 요 12:1절을 보면 “유월절 엿새 전에”라는 말이 나온다. 한 번의 유월절과 연관된 표현들이다.

요한복음 2장 이전에도 예수님께서는 많은 활동을 하셨다.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을 베푸시는 등으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셨다. 그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리고 요 20장부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간 사역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요한복음의 유월절을 근거로 예수님의 전체 공생애 기간을 더해보면 약 3년이 됨을 어림잡을 수 있게 된다. 멋지지 않은가. 오직 성경만을 가지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을 따져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물론 관주 성경이 필요하다. 이 멋진 작업을 한국교회 성도들이 소홀히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1-5. 마태복음 이야기
마태복음의 특징 중 하나는 복음의 대상이 유대인이라는 데 있다. 누가복음이 이방인을 대상으로 기록되었다는 것과 대조된다. 마태복음 맨 처음 시작이 족보로 되어 있는 점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됐다는 기본적인 이유다.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마태복음 기록자는 예수님이 바로 아브라함의 계보에 속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마태복음의 특징 중 또 하나는 구약 성경을 참으로 많이 인용했다는 점이다. 역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보다 잘 설명하기 위해서다. 바로 구약에서 언급된 그분(메시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 것이다. 살펴보자. 먼저 마1:22-23절이다.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2-23)

예수님의 탄생 사건이다. 이것 역시 구약성경과 연관되었음을 마태복음 기자는 언급하고 싶었다. 위 성구는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하시는 말씀의 일부다. 22절에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했다. 구약의 선지자가 하신 말씀과 아기 예수의 탄생 사건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23절은 그 선지자가 하셨다는 말씀을 인용해서 기록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가 그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 선지자가 누구이며 또 그가 어떠한 말씀을 주로 하셨는지에 대해 어렵지 않게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렇지 않다. 알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관주가 있다. 관주가 우리를 그 선지자에게로 안내해 준다. 우리네 선배들의 수고의 땀방울이 이미 그렇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위 23절 중 ‘보라 처녀가’에 관주 표시가 있다. 그 관주는 ‘사7:14’로 연결시켜주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신 말씀이다. 그 앞에 ‘인’이라는 글자는 인용되었다는 의미다. 즉 이사야 선지자가 하신 말씀을 주의 사자가 인용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찾아보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구약 이사야서에 이미 그러한 내용이 있다니 정말 놀랍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마태복음의 상황에서 이루어졌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구약 성경의 인용은 예수님께서도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시는 장면을 예로 들어보자. 마4:1-11절까지의 말씀이다.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이 말씀의 관주를 보자. 신명기 8:3에 도달하게 된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4:1-11)

예수님은 마귀로부터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마4:3)며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님은 그 마귀의 시험을 보기 좋게 물리치셨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은 무엇일까? 칼 같은 무기를 사용하시거나, 하늘 군대를 부르시거나 또는 공갈 협박 같은 게 결코 아니었다. 이미 기록된 구약 성경을 사용하셨다. 4절에 나타난 “기록되었으되”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 기록된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이다. 이 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것이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어디 기록되었다는 것인가? 구약성경을 처음부터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만, 힘든 일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역시 우리 선배들이 이미 정리해 놓았다. 바로 관주를 통해서다. “사람이 떡으로만” 앞에 관주 표시가 있다. ‘인 신8:3’이라고 되었다. 신명기 8장 3절의 말씀을 인용했다는 의미다. 그 말씀 역시 살펴보자. 다음과 같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모세5경 중 하나인 신명기서에서 이미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교훈해 주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떡이 아니라 말씀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 흐르는 하나님의 원하는 바인 것이다.

위 “사람이 떡으로만”에 있는 관주에 성경구절이 하나 더 있다. ‘비 요4:34’가 그것이다. 이는 요한복음 4장34절과 ‘비교’해 보라는 말이다. 그 지시대로 요4:34절을 찾아 비교해 보자. 아래와 같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무슨 말인가. ‘예수님의 양식 =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는 방정식이 나온다. 위의 구절과 함께 정리해 보자. ‘떡’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그리고 ‘예수님의 양식’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들을 연결해 보면 멋진 하나의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생의 참된 기쁨과 거룩함을 떡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때 맛볼 수 있다는 식이다.

관주는 계속해서 연결이 된다. 위 요 4:34절에도 관주가 있다. 그것까지 찾아보면 더욱 풍성한 성경 연구의 결과가 나오리라 본다. 풍성한 성경 연구는 관주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긴장해야 할 게 있다. 마귀도 구약성경을 인용한다는 점이다. 조금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감히 성경을 마귀가 인용하다니 말이다. 그러나 사실이다. 바로 위에서 본 마태복음 성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의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의 말씀으로 유혹에 실패한 마귀는 집으로 돌아간 게 아니다. 이를 갈며 다시 준비를 하고 등장한다. 이번에는 예수님이 하셨던 것을 흉내내길 했다. 바로 구약성경을 인용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마귀는 두 번째로 예수님을 유혹할 때 이렇게 말했다. 아래와 같다.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마4:6)

“기록되었으되”라는 말로 예수님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가 너를 ···하리로다”라며 성경 말씀을 직접 인용하며 사용했다. 마귀도 성경의 내용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마귀는 어느 성구를 인용한 것일까? 이때도 관주가 우리를 도와준다. ‘그가’ 앞에 관주 표시가 있다. 그것은 ‘인 시91:11-12’으로 안내한다. 즉, 마귀가 시편 91편 11-12절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유혹하려고 했다는 말이다. 시 91:11-12절은 아래와 같다.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시91:11-12)

마귀는 성경말씀을 듣기만 해도 기절을 하거나 도망가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또한 마귀는 성경 말씀을 전혀 모르거나, 인용하더라도 스스로 혼동되어서 잘못 사용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역시 아니다. 마귀도 아무렇지도 않게 성경말씀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도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가. 요즘 이단은 과거와 달리 성경 구절을 많이 사용한다. 많이 사용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하기도 한다. 어떤 점에서는 정통교회 성도들보다 더 많이 읽고 외우는 데 열정을 낸다. 그들이 우리들에게 여러 개의 성경 구절을 읊조리며 접근하면 우리는 쉽게 ‘아! 성경 말씀을 사용하니 이단이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단들도 이것을 십분 활용한다. ‘우리는 성경말씀만 사용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 정통입니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결코 정통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이단일 수 있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반성도 된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가가호호 방문 전도하면 이단이니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우리가 이미 오랫동안 그렇게 전도를 해왔다. 어느 날부터 우리는 그러한 전도 방식에 소홀히 하였고 이단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 온 셈이다. 그래서 이제 가가호호 전도하는 이들을 조심하라며 경계한다. 슬프지 않은가.

그런 세상이 되었다. 성경 구절을 많이 활용한다면 오히려 경계를 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제 우리는 성경 구절의 단순한 인용을 넘어 올바른 ‘성경 해석’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그릇된 성경 해석을 하며 많은 성경 구절 인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또한 악한 일이다. 본 특강은 바로 올바른 성경 해석(주해)에 접근하고자 한 것이다. 그 첫 번째 방식으로 관주를 활용하여 성경이 성경을 스스로 해석하도록 하는 점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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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운철 목사는 월간<현대종교>, 월간<교회와신앙>, 주간<교회와신앙>, 인터넷신문<교회와신앙>에서 이단사이비 문제 전문 취재기자로 20여 년 간 사역을 해 왔다. 신천지, 구원파, 하나님의 교회 등 이단 사이비 문제의 현장을 직접 잠입 취재, 보도했다. 또한 이단 사이비의 핵심 교리들을 분석, 비판하는 다수의 글도 발표했다. 신학교 강의는 물론 각 지역 교회와 연합 기관의 수련회와 집회에서 특강을 해 오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B.A.)와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TH.M)를 졸업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아주사 퍼시픽 대학교(Azusa Pacific Uni., M.A.R)에서 공부를 했다. 두 편의 논문, <요한계시록을 오용해 나타난 최근 이단사상 비판>과 <An Evangelical Christian Perspective on Money>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신천지 포교 전략과 이만희 신격화 교리>(장운철, 진용식, 정윤석 공저, 한국교회문화사, 2007), <그리스도인들이여! 세상을 읽자>(장운철, 솔로몬, 2012), <이단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33가지 성경 이야기>(장운철, 부흥과개혁사, 2013) 등이 있다. 지난 2007년 서울에 만나교회를 개척해 지금까지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 이단특강을 원하는 경우 이메일로 연락하면 된다(kofking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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