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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 모든 소유를 버려야만 참된 재림신앙인가

기사승인 2012.04.05  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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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곧 끝난다는 단체가 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단체 신도들은 세상 끝을 맞을 채비가 한창이다. 수십년 동안 경영하던 사업체를 정리한 사람도 있다.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을 그만 둔 신도도 있다. 그리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말세에 구원 얻을 구원의 방주라면서. 초중고생 자녀들은 학업도 중단하고 부모를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간 사람이 30여 명이다. 집단 생활을 하는 그들은 흰 성가대 가운을 입고 예배를 드리고 세상 끝을 준비하고 있다. 종말을 준비한다는 ‘깨어있는교회’에는 관할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세 번이나 다녀갔다고 한다. 최근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취재한 이양희 목사의 ‘깨어있는교회’의 현실이다.

‘깨어있는교회’ 신도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바람직한 자세라는 신념이 확고하다. 기자가 만난 한 신도는 성경에서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나를 좇으라’ 하셨기 때문에 자신들은 지금 성경대로 가고 있다고 강조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남은 자,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게 그 신도의 입장이다.

그 신도들이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깨어있는교회’ 담임 이양희 목사의 메시지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주산’(主山)으로도 불리는 이 목사는 메시지를 통해 모든 소유를 버린 자는 주님 품에 안겨 영원히 안식을 얻게 되리라고 하는 등 ‘세상 끝’에 구원을 얻으려면 ‘모든 소유를 버릴 것’을 자주 강조해 왔다.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부’를 쌓은 사람은 심판 때 불속에서 울며 통곡하게 될 것이니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런 메시지 가운데 노출된 ‘깨어있는교회’ 신도들이 자신의 사업체·직업·집 등을 정리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간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 모든 소유를 버린 자는 영원히 안식을 얻게 된다는 이양희 목사의 메시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 그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없다. 그러나 과연 ‘깨어있는교회’ 신도들처럼 직업·사업체·학업을 포기하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집단 생활을 하는 게 과연 재림을 준비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일까?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신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 파루시아(parousia, 재림을 의미하는 헬라어), 마라나타(Maranatha, 현재적으로 ‘주님께서 오신다’, 미래적으로 ‘주여 어서 오소서’를 의미하는 아람어)의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다.

먼저 개인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단체 생활을 해야 재림을 준비하는 참 신앙인일까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구원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바울을 살펴보자. 바울은 재림 신앙을 가진 사도였다(살전 4:17). 그러나 바울의 모습을 보면 결코 그가 개인의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하지 않았음을 쉽게 파악하게 된다. 그는 하인을 거느린 부자이자 자주 옷감 장사인 루디아의 집에 가서 세례를 베풀었다. 루디아는 자신의 ‘집’에서 바울이 머물도록 배려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울이 루디아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면서 그의 소유를 버리라고 한 말씀은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바울은 재림 신앙, 하늘로부터 다시 오시는 주님의 재림을 대망하며 살았지만 루디아의 ‘부’를 그대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뒤에도 루디아는 계속해서 집을 소유하고 있었고 그 집에 바울은 머물기까지 한다(행 16:40).

‘가이사의 집’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구절(빌 4:22)을 살펴보자. 개역성경에서 ‘가이사의 집’으로 번역했는데 현대인의성경, 쉬운성경은 로마 황실로 번역한 구절이다. 다음과 같다. “모든 성도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하고, 로마 황실 안에서 믿는 몇몇의 성도들이 여러분에게 또한 인사드립니다”(쉬운 성경 빌 4:22).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 그것도 황제의 황궁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의미다.

생각해 보자. 로마의 황실에 있는 사람들은 부한 사람들이었을까? 가난한 사람들이었을까? 권세가 강한 사람이었을까, 약한 사람이었을까? 답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로마 황실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은 부를 내던지고 그 로마 황실을 ‘탈출’할 것을 명령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다른 성도들에게 인사를 한다고 안부를 전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중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좇은 사람도 있었지만 ‘부’를 그대로 유지한 사람도 있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그랬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富者)’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마 27:57).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막 15:43).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가타 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러니”(눅 23:50~51).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 요셉은 부자(富者)였다. 게다가 공회원이었다. 공회원이란 유대인의 종교적 최고 재판소의 회원이란 의미다. 지금으로 따지면 법관이다. 그는 자신의 부를 그대로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를 ‘예수의 제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고 표현한다.

한마디로 파루시아,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진 신앙의 선배들이었지만 이들의 모습을 통해서는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거나 그래야 구원을 얻는다는 조금의 암시도 찾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예를 통해서 볼 때 개인의 소유를 획일적으로 부정하지 않으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주님이 곧 오신다’, ‘세상이 끝난다’며 소유를 다 버리라거나 그것을 구원과 연결하는 메시지는 성경에서 벗어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직업을 버리고 주님 오시기를 기다려야 참된 재림신앙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결론은 주님 오심을 기다렸던 신앙의 선배들은 자신의 직업을 버리기보다 오히려 활용하며 살았다는 점이다. 재림 신앙을 소유한 사도 베드로(벧후 3장)는 전도여행을 하다가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한다)”(행 9:43). 베드로가 전도한 시몬은 ‘집’도 있고 ‘피장’, 즉 가죽 제품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베드로의 전도를 받았으나 시몬은 자신의 소유와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굴라는 아내 브리스길라와 천막제조업을 하는 사람이었다(행 18:2). 재미있는 것은 바울도 같은 직업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아굴라의 천막 제조업에 동참했다. 바울이 아굴라의 직장에 취직(?)한 셈이다. 종말이 왔다고 자신의 직업(학생의 경우 학업)을 버리고 일도 중단하고 집단 생활하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바울은 살후 3:8에선 ‘밤낮으로 수고하며 열심히 일했다’고 했으며 “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가르쳤다(살후 3:10). 일하는 것을 권장하고 오히려 ‘일’, 직업을 버리고 일하지 않는 사람을 질책하는 모습이다.

또 바울은 자신에 대해 설명하며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고전 4:12)라고 언급해 복음 전도와 함께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교회를 돌보는 일에도 열심을 다했으며 생계를 위한 육체적 노동에도 열심을 다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에 의하여 개종한 사람들에게 생계를 의존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직업을 가짐으로써 생활을 유지해 나갔다(행 18:3; 살후 3:9). 재림이 가까웠다고 신도들에게 직업과 학업을 중단토록 끌어가는 신앙은 성경이 말씀하는 참된 신앙이 아니다.

최낙범 목사는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석사논문에서 재림 신앙을 가진 성도의 바른 자세에 대해 △죄와 싸우는 제자의 삶을 산다 △죄로 오염되고 부패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산다 △시간과 재능, 물질과 지위를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자연을 개발하고 고치고 발전시키는 문화적 사명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정리했다. 최낙범 목사는 이것이 주님의 재림을 참으로 대망하며 사는 성도의 바른 자세다라고 역설한다(<세대주의 ‘휴거’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연구>,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조직신학, 2010년 석사논문).

성기호 명예총장(성결대)은 종말을 기다리는 신앙인의 바른 자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속적 방탕을 좇지 말고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마 24:36)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마 25:19, 25:21) △거룩한 생활에 힘써야 한다(살전 5:23) △선교에 힘써야 한다(마 24:14)고 정리했다(이야기신학, p.360~362).

이중 두 번째,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성 명예총장은 “우리에게 각각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주셨는데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종들과 계산하는 날이 된다. ···재림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맡기신 일에 열심해야 하겠다”고 썼다(위의 책, p.361). 성 명예총장이 말하는 ‘일’은 선교나 교회 일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직업을 의미한다. 그 모두를 포함한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주의 재림을 맞는 성도의 바른 자세라는 설명이다.

마르바던은 <약할 때 기뻐하라>(복있는사람)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종말에 대한 징조는 오직 한가지, 모든 무릎을 꿇게 만들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영광스런 모습 뿐이다. 그 때가 올 때까지 종말을 추측하는 사람들을 좇지 말 것을 예수님은 경고하신다(눅 17:23, 21:8).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가난한 자를 돌보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나라를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며, 이 땅의 현실 속에 그리스도의 통치가 임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리저리 종말을 좇아 다녀서는 안된다”(위의 책, p62).

주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학업·직업을 포기하고 특정 장소에 모이는 것은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들이 보여야 할 바람직한 태도가 결코 아니라는 공통된 지적이다.

(다음엔 '깨어있는교회' 이양희 목사의 반론을 게재합니다)
 

참고자료
강문석·김일천 공저 <기독교이단제설>, 칼빈서적, 1994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건강한 성결인 건강한 교회>,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출판부, 2007년
탁명환, <한국의 신흥종교- 기독교편 4권>, 국제종교문제연구소, 1987년
성기호, <이야기신학>, 국민일보, 1999년
최낙범, <세대주의 ‘휴거’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연구>,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조직신학, 2010년 석사논문
마르바 던, <약할 때 기뻐하라>, 복있는사람, 2007년

정윤석 unique44@paran.com

<저작권자 © 기독교포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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